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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단상] 영등포역 에스컬레이터 중간에서 "억울함" 에 대한 상념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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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정면컷

 

 

어느 금요일 저녁.. 오고가는 인파로 늘 북적이는 영등포역 앞 에스컬레이터.. 

여느 일상처럼 퇴근 후 조금은 지쳐있었고 배도고프고.. 빨리 집으로 가서 침대에 벌러덩 눕고싶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앞뒤 사람들의 소음들 속에서 어느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귓 속으로 들어왔다.. 

 

 분명 한참 전부터 뒤에서 통화하던 여자애 였는데.. '억울해' 라고 외치며 터져나오는 울음 소리가 내 귓가에 확 꽂힌 것인다.  참아내는 울음과 뒤섞인 울먹이며 얘기를 잇느라..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20대 초반쯤일 듯한 목소리의 어린 여자 애는 주분의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또 수화기 너머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느라.. 울음은 꾹꾹 누른채 한참을 얘기하다가...

또 한번씩 한번씩 터져나오는 울음소리.. 엉엉.. 

저 어른 여자애에게 무슨 억울한 일이 있길래 저리 서럽게 울까...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할 나이인데.. 무에가 저렇게 억울할까...

 
그 잠깐 사이에 '억울함' 이란 단에가 마음에 콱 박히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난 저렇게 억울한 적이 있었나?

국민학교 5학년때 반아이들이 막 떠드는데 갑자기 다른 반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누가 반장이야?
내가 손을 들자 조용히 못해? 소리지르곤 막대기로 머리를 서너차례 탁탁 내리쳐 때리고는 나가셨다.
한번도 안맞아본 머리를 무차별 맞아서, 다른 친구들 다 있는데 나만 맞아서.. 선생님이 따로 당부한것도 아닌데 그게 왜 내 책임을까.. 하는 '억울함' 때문에.. 책상에 털썩 엎드려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났다.

그 외에는 그닥 기억에 각인될만큼 억울했던 순간이 없는 듯 하다.

 
그 다음 떠오른 질문
'왜 난 그리 억울했던 기억이 없을까'

한참 생각해봐도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리 억울한 일이 없었던거 같다..

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너무 서럽고 속상해서 아마 못견디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신이 그런 상황을 미리 막아주신 걸까...

 

내가 힘든 이유는 그냥 내가 잘못해서 였다.. 내가 전혀 잘못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힘든 일이 생겼던 적은...

아마. 내 기억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잘못'이라고까지 얘기할 수 는 없지만.. 어쨌던 나의 '어떠함' 때문에 생긴 일이란걸 인정하고 나면..

사실 그렇게 억울하지 않았던 기억이 더 많은거 같기는 하다..

 

암튼.. 

저 아이는 무에가 그리 서러울까..

저 서러움 안에서 조금이라고 나의 '어떠함'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었고..

나를 조금더 들여다 보고.. 그래서 내가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라고

나중에라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등등의 복잡한 생각이 그 2-3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에스컬레이더는 거의 3층 역사 근처까지 올라갔고..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대체 왜 이러나 할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꺼 같았지만.. 그런게 개의치 않을 만큼..

이 아이의 서러움이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안아줄까.. 넘 안쓰럽다.. 고민하는 사이.. 

그 복잡한 에스컬레이터는 3층 영등포역사 에 다 올라왔고.. 난 그냥 내가 가야할 1번 출구쪽으로 걸어간다.. 

주춤주춤..  그 아이는 영등포 역사안쪽으로 가는 거 같았다..  

그제사 겨우 몸을 돌려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캐주얼한 복장에 이쁜 염색머리에.. 전화기를 두손으로 부여잡고.. 계속 엉엉 울면서.. 역사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아이야.. 언젠가.. 내가 그렇게 억울하다며 펑펑 울면서 걸어갔던 적이 있었지.. 라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꼭

올꺼라고.. 이런 경험이 너의 맘을 더 단단하게 해줄꺼라고..

 

들리지도 않는 응원을 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한번 안아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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